축구장 327개 면적을 잿더미로 만든 올해 첫 대형 산불인 경남 함양 산불은 방화로 드러났습니다. 범인은 대기업 직원이란 가면을 쓰고 다녔던 희대의 연쇄방화범 '봉대산 불다람쥐' 66살 김모 씨였습니다. 10년간 수감 생활은 그의 충동을 잠재우지 못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 범죄를 넘어, 치료되지 않는 '방화광(Pyromania)'의 위험성과 우리 사회의 허술한 사후 관리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7년간 '완전범죄' 저지른 희대의 연쇄방화범
지난 1월 29일 전북 남원의 한 야산을 시작으로 2월 7일과 21일에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일대 야산에서 잇따라 불이 났습니다. 공교롭게도 한 달 사이 3건의 산불 모두 김 씨 주거지 인근에서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CCTV를 통해 범행 직전 김 씨가 해당 장소를 다녀온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범행을 부인하면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습니다. 경찰은 김 씨가 키우던 반려견에서 DNA를 채취해 화재 현장에 남은 분변과 대조 까지 하며 압박했고, 결국 범행을 자백받았습니다. 그런데 김 씨의 방화 동기는 충격적입니다.
[서정민/경남경찰청 형사기동대 1팀장 : 최근에 산불 뉴스를 보고 희열감을 느꼈고,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불을 질렀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 씨는 프로파일러 면담에서 "범죄를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과거 17년간 들키지 않았던 완전범죄의 성취감에서 희열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1994년부터 2011년 검거 전까지 17년 동안 울산 전역에서 무려 96차례나 불을 질렀습니다. 당시 수사당국이 전담팀을 꾸리고 3억 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현상금까지 걸었지만, 그는 비웃듯 산등성이를 누볐습니다. 낮에는 대기업 직원으로 밤에는 방화범으로 이중생활을 이어 온 겁니다.
"간이 커졌다"…치료 없는 처벌이 낳은 '예고된 재앙'
김 씨는 방화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21년 출소 후 고향 함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OO마을주민 : 눈이 오면 눈도 함께 치우고 인근 교회도 다니고 성실했는데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죠. 약간 거리를 두더라고요.]
마을주민들은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받아줬지만, 그는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범죄 사실이 알려져 이웃과 보이지 않았던 벽이 있었던 겁니다. 김 씨는 고향에서 5년 동안 평범한 이웃으로 살며 방화 욕구를 억눌러왔습니다.
최근 프로파일러와 면담에서 "출소 후 불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꾹꾹 억눌렀는데, 점점 간이 커졌고 결국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17년간 들키지 않았던 '방화의 추억'과 10년의 수감 생활이 뒤섞여, 억눌려 있던 욕구가 한순간에 폭발한 겁니다. 프로파일러는 '김 씨'를 미국 최악의 방화범인 '존 레너드 오어(John Leonard Orr)' 같은 전형적인 '방화광'으로 분류했습니다.
미국의 가장 악명 높은 연쇄방화범은 '소방관'
'존 레너드 오어(John Leonard Orr)'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불을 지른 연쇄 방화범으로 종신형을 받고 현재도 복역 중입니다. 오어는 1980년대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소방국의 베테랑 방화 수사관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발화 지점을 귀신같이 찾아냈습니다. 1991년 오어가 30년 가까이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약 2,000건의 방화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 전역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지연 발화 장치'로 불을 지른 뒤, 소방관으로서 현장에 출동해 불을 끄고 수사를 지휘했습니다. 김 씨가 17년간 잡히지 않으며 쾌감을 느꼈듯, 오어 역시 소방관이라는 완벽한 가면 뒤에서 '신적 존재감'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오어는 자신의 범행을 소설로 쓰며 그 희열을 기록하기까지 했습니다. 검찰은 오어의 소설이 단순 허구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소설 속에는 일반인은 알 수 없는 화재의 세부 묘사와 가해자의 심리 상태가 담겨 있었으며, 이는 오어가 범행을 통해 성적인 쾌락과 권력욕을 느꼈음을 암시했다고 했습니다. 소설은 결국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범행의 '자전적 기록'으로 인정되어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웅혁 /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 긴 세월 동안 '들키지 않았다는 자신감은 방화광들의 뇌에 강력한 보상 회로를 만들었고, 이는 일반적인 범죄를 넘어선 일종의 '신적 전능감'으로 이어졌습니다.]
'격리'와 '치료' 병행하는 시스템 구축 시급
이번 방화 건으로 허술한 관리 실태가 드러났습니다. 김 씨는 1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당시 치료는 단 1개월 정도만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출소 이후 5년 동안 지자체나 의료기관으로부터 받은 상담이나 치료는 없었습니다. 방화광은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정신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법 체계는 '형기'만 채우면 아무런 제약 없이 사회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염건령 / 한국범죄학연구소장 : 방화광에게 방화는 쉽게 끊지 못하는 마약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십수 년간 이어진 완전범죄의 성취감에 도취돼 단순한 처벌만으로는 재범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 산불이 남긴 과제를 짚어봐야 합니다.
먼저, 상습 방화범에 대해 형기 종료 이후에 심리 치료와 상담을 의무화해야 합니다. 또 고위험군 전과자의 거주지 이전 시 관할 경찰서와 지자체가 연계된 모니터링도 필요합니다. 특히 강력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전자발찌 부착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합니다. 뒤틀린 희열을 위해 불꽃을 피우는 이들을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전문적인 치료와 사후 관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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